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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앞둔 택배노동자의 하루…크고 무거워진 물량에 노동강도 2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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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2024-09-13

지난 6일 택배노동자와 10시간 동행

추석 물량 급증에 부피·무게도 늘어

배송 전에는 '까대기' 작업까지 해야

"택배노동자도 권리 보장받아야 해"

[서울=뉴시스] 우지은 기자 = 택배노동자 이재덕씨가 지난 6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택배물품을 내리고 있다. 2024.09.13. now@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우지은 기자 = 부슬비 내리는 지난 6일 오전 5시20분, 동트기 전 한산한 도로에 유일하게 빛을 밝히는 곳이 있었다. 서울 광진구에 있는 동서울우편집중국(집중국)이다. 빨간색 우체국 택배차들이 쉴 새 없이 이 곳으로 모여들었다.

지난 2일부터 오는 20일까지는 우체국 '추석 특별소통기간'(소통기간)이다. 이 기간에는 택배 물량이 평소보다 많아지고 부피도 크고, 무거워져 더욱 분주해진다. 

추석을 열흘 앞둔 지난 6일, 뉴시스 취재진은 오전 5시20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약 10시간 동안 우체국 택배노동자와 함께 물품을 배송했다. 택배노동자들은 소통기간에는 열악한 작업환경에 업무 강도까지 높아져 고단하다고 토로했다.

3년 차 택배노동자인 이재덕(48)씨는 오전 3시40분께 눈을 떴다. 집 앞에 주차해 둔 우체국 택배차를 운전해 집중국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5시40분. 평소 같으면 택배차에 물품을 실어야 할 시각이지만, 집중국 안에서는 여전히 자동 분류가 한창이었다.

이씨는 "새벽 1~3시 사이에 택배물품이 '슈트'라고 불리는 집중국 내 레일(rail)을 따라 자동으로 분류되는데, 소통기간에는 늘어난 물량으로 인해 분류 작업이 오래 걸려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오전 6시25분께부터는 '까대기' 작업이 시작됐다. 까대기는 택배노동자가 산더미처럼 쌓인 물품 중에서 자신이 배송하는 권역의 물품을 직접 분류해 담는 작업을 뜻한다.

까대기는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를 유발하는 주된 문제로 지적돼 왔다. 택배노동자의 주 업무는 배송인데 분류 업무가 더해지면서 노동시간이 늘어나고 강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박대희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 서울지부장은 "원래 까대기 작업은 집중국 택배노동자의 일이 아니지만 소통기간에만 택배노동자가 담당하기로 사용자와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이씨가 팀이 담당하는 권역의 물품을 바퀴가 달린 롤팰릿(pallet)과 평팰릿에 담아 오자, 나머지 동료 4명이 송장에 적힌 주소에 따라 성인 남성의 키를 훌쩍 넘길 정도로 쌓인 물품을 1차 분류해 각자의 차 앞으로 옮겼다. 

1차 분류가 끝나자 2차 분류가 시작됐다. 5명의 팀원이 각자 배당된 물량을 차에 싣는 작업이다. 10년 넘게 택배업에 종사하는 이씨의 동료 김대경씨는 "가장 먼저 배송해야 할 물품은 앞쪽에, 나중에 배송해야 할 물품은 가장 안쪽에 나눠 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택배노동자는 자신의 키만큼 쌓인 롤팰릿을 끌고 집중국 안과 밖을 오가며 물품을 나르고 있었다. 우체국 택배차보다 4배 더 큰 화물차가 그 사이를 빠르게 지나다녔다.

롤팰릿을 끌고 나갈 수 있는 통로는 폭 1m도 채 되지 않는 내리막길 2개 뿐이었다. 택배노동자들은 자신의 체중으로 팰릿의 무게를 받치며 뒷걸음질 쳐 내려갔다. 비가 내려 미끄러운 바닥에서 수십㎏ 물품을 끌고 지나가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계속됐다.

이를 보던 택배노동자 김학선씨는 "밖에서 상차하는 택배노동자들 사이를 큰 차들이 빠르게 오고 간다. 사고 나는 건 시간 문제"라고 짚었다. 

집중국 왼쪽과 오른쪽에는 각각 27개의 독이 있다. 독 1개당 택배차를 1~2개씩 세워두고 집중국 안에서 차에 바로 물품을 실을 수 있다. 하지만 이씨의 동료 김태완씨는 "집중국에 도크(독)가 부족해 일부 택배차는 밖에 세워두고 롤팰릿을 밖으로 끌고 가야 한다"며 "내리막길에 미끄럼방지 스티커도 없어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약 두 시간 동안 까대기 작업을 마친 오전 8시33분께 택배노동자들의 등판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얼굴에는 부슬비와 땀이 섞여 흘러내렸다.

택배노조에 따르면 지난 6일 동서울우편집중국 당일 배송물량은 12만3618통이었다. 이중 위탁배달원은 47%인 약 5만8000통을 배송했다. 이씨의 할당량은 183통이었다. 동료보다 물량이 적은 대신 배송 권역이 넓다.

위탁배달원은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로 우체국 정규직인 집배원과 다르다. 원청이 아닌 도급업체와 2년마다 계약을 맺는다고 이씨는 전했다. 

이씨는 "소통기간 물량은 평소의 1.7배 정도 된다. 과일상자 등 부피가 크고 무거운 물량이 많다"며 "이런 물량이 전체 배송물량의 80~90%를 차지한다"고 했다. 추석 전 택배노동자들이 과로에 시달리는 이유다.

신선도가 중요한 생물이 많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 6일 배송물품은 강원 정선군에서 보내온 토마토부터, 대구 수성구에서 온 한우, 전남 진도군에서 잡아 올린 전복 등이 주를 이뤘다. 이씨는 "생물은 당일 배송이 원칙이다. 특히 폭염이 계속되는 요즘 날씨에는 기운이 쉽게 빠지는데 물품이 상하지 않도록 빠르게 움직여야 해서 힘들다"고 말했다.

오전 8시50분께 이씨는 집중국을 출발해 첫 목적지인 관공서를 거쳐 병원, 빌라촌, 안경원, 교회, 아파트단지 등을 다녔다. 수십㎏이 나가는 물품을 두 팔 가득 안거나 어깨에 지고 계단 없는 빌라를 오르내리고, 수레에 물품을 쌓아 아파트 동마다 끌고 뛰어다녔다. 차가 진입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골목을 가야 할 때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비가 왔지만 우산을 쓸 여유는 없었다. 

오후 3시34분께 아파트단지를 끝으로 이씨는 배송을 마쳤다. 아침에 눈을 뜬 지 12시간, 일을 시작한 지 10시간째다. 그는 "오늘은 기자와 두 사람이 배송한 덕분에 적어도 두 시간은 일찍 끝난 것"이라며 "어떨 때는 내가 무얼 먹고 살겠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이 든다. 택배는 정말 마지막에, 도저히 일을 못 구할 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무릎을 다쳐 16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약 6개월간 일을 쉬고 치료에 전념하다가 택배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지금은 위탁배달원으로 계약을 맺고 일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씨는 "우체국 마크를 단 차를 타고 배송하지만 특수고용직으로 불안한 신분이다. 택배노동자도 노동자"라며 "택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좋은 마음으로 배송하고 있다. 그에 상응하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가 끊임없이 이어지자 지난 9일 김민석 고용노동부 차관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며 "근로감독을 준비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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