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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사회적합의에서 '쿠팡'만 예외인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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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2024-08-09


‘자정 전까지만 주문하면 다음 날 오전 7시 전에, 오전에 주문하면 당일 내 배송받을 수 있습니다.’ 쿠팡의 로켓배송은 당일 또는 익일 배송, 즉 빠른 배송이라는 고객의 편의성 확보를 목적으로 한다. 빠른 배송 속도로 소비자를 끌어모은 쿠팡의 물류 전문 계열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이하 CLS)는 택배업계 후발주자임에도 지난해 기준 택배 시장 점유율 2위에 올랐다.

쿠팡은 양질의 고용 창출을 동반한 성장이라고 자평해왔다. 쿠팡은 2014년 사업 초기부터 배송 전문 인력 쿠팡맨(현 쿠팡친구)을 직접 고용했다. 이후 분류작업을 담당하는 헬퍼도 배치했다. CJ대한통운, 롯데글로벌로지스, 한진 등 대부분의 택배사가 배송 업무를 대리점에 위탁해 택배기사를 간접고용하고 택배기사에 분류작업을 맡기면서 일정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등 문제가 지적된 것과 상반된 조치였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택배산업이 급성장하자 택배기사 과로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졌다. 이를 해결하고자 택배산업 노사정은 2021년 택배기사의 작업 범위에서 분류작업을 배제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택배기사 과로 방지 대책 사회적 합의(이하 택배 사회적 합의)’를 타결했다. 사회적 합의 이행은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이하 생물법)상 표준계약서로 담보하기로 했다. 같은 해 1월 국토교통부로부터 택배 운송사업자 자격을 막 취득한 CLS는 사회적 합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당초 CLS는 2018년 택배 사업자 자격이 있었지만 로켓배송 물량 증가에 따른 사업 재정비 등을 이유로 2019년 자격을 반납했다. 그리고 2021년 택배 사업자 자격을 재취득했다. 다시 택배업계에 진출한 쿠팡의 택배 현장은 사뭇 달라졌다. 직접 고용된 쿠팡친구보다 대리점과 계약을 맺고 일하는 특수고용직 택배기사들이 더 늘어났다. 일부 분류작업을 택배기사가 수행한다는 증언도 나왔다.

쿠팡 택배기사들은 CLS가 사회적 합의 내용과 무관하게 사업을 운영하면서 택배산업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랜 기간 이해당사자 간 논의를 거쳐 마련된 택배기사 노동조건을 CLS가 지키지 않으면서 택배기사들의 과로 문제가 다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경쟁사들도 CLS를 따라 향후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려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 가운데 사회적 합의사항과 CLS의 택배 노동 현장 간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쿠팡 택배기사, ‘소분’ 분류작업 수행

분류작업은 다수의 택배회사에서 개별 택배기사가 배송할 택배를 구분하는 업무다. 택배를 정확히 분류하고 적재해야 오배송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배송에 앞서 필요한 작업이다. 택배 사회적 합의는 배송 건당 수수료만을 받으며 일하던 택배기사들이 따로 명시된 대가 없이 분류작업을 수행하며 과로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분류작업 책임이 택배사에 있음을 명확히 했다. 사회적 합의에 따르면 택배사는 별도의 분류인력을 투입하고 분류 자동화를 위한 작업 개선 노력을 해야 한다. 불가피하게 택배기사가 분류작업에 참여할 경우 적정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쿠팡 캠프에서는 1차로 자동 분류 시스템이 지역별로 분류하고 2차로 분류인력인 헬퍼가 배송 구역별로 분류작업을 한다. 다만 2~3명의 배송 구역을 묶어서 ‘통소분’한 형태의 물품들이 택배기사에 전달되기 때문에 쿠팡 택배기사들은 본인 구역의 물품을 한 번 더 소분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문에는 택배 분류작업에 차량별 또는 개인별 분류작업도 포함돼 있다. 이에 따라 쿠팡 택배기사들이 대가 없이 택배 소분이라는 분류작업을 수행하는 건 사회적 합의 위반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선범 택배노조 정책국장은 “분류작업을 한다는 건 원칙적으로 택배기사가 타인이 배송할 물건을 만지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배송할 물건이 차 앞에 딱 놓여 있어야 하는 거다”라며 “헬퍼가 대단위 분류작업만 하고 마지막 소분은 기사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소분도 결국 분류작업의 일부”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 출석한 홍용준 CLS 대표는 택배기사들이 분류가 완료된 걸 배송한다고 밝혔다. 이에 택배노조는 쿠팡 택배기사들이 소분 작업을 하는 모습을 찍은 영상을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공했고 한준호 의원은 이를 근거로 CLS 측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했다. 그런데도 현재까지 CLS는 택배기사가 분류작업을 수행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2~3회전 배송, 마감 시간 압박에
주 60시간 초과?

쿠팡 택배기사가 주간(오전 9시~오후 8시) 조는 하루 2회전, 야간(오후 8시~다음 날 7시) 조는 3회전 배송하고 있다고 밝혔다. 1회전은 캠프에 배송할 택배를 받으러 1번, 2~3회전은 2~3번 캠프에 간다는 것을 뜻한다. 강민욱 부위원장은 분류작업이 최소 30분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캠프에 갈 때마다 분류작업을 한다면 하루에 최소 1시간 이상은 공짜 노동을 하는 셈이라고 했다.

쿠팡 택배기사들이 하루 2회전 이상 배송해야 하는 이유는 CLS와 대리점 간 체결한 계약 내용 때문이다. CLS와 대리점은 계약 해지에 관한 부속합의서를 체결하고 있는데 합의서에는 대리점이 일정한 업무수행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도 CLS가 계약을 ‘즉시 해지’하거나 ‘위탁 물량을 조정’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하루 2회전 배송 미수행 건이 2주 동안 2건 이상 발생’, ‘월평균 신선식품 배송률 95% 미만’ 등이 있다. 기준에 미달하면 대리점과 계약한 자신도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 다수의 택배기사는 업무수행 기준을 충족하고자 노력한다.

강민욱 부위원장은 이 과정에서 택배기사가 장시간 노동 등 무리해서 일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쿠팡 로켓배송이나 신선식품 배송 마감 시간은 주간의 경우 오후 8시, 야간의 경우 오전 7시다. 이 시간을 맞추지 않으면 페널티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로켓배송 물품이나 신선식품을 먼저 배송하고 마감 시간 압박이 덜한 물품을 나중에 배송하면서 사실상 하루에 12시간 초과 근무를 하는 상황도 벌어진다는 것이다. 택배 사회적 합의에는 노사정이 택배기사의 노동시간은 일 12시간, 주 60시간을 초과하지 않도록 노력한다고 명시돼 있다.

강민욱 부위원장은 “2회전 물건을 싣고 캠프에서 오후 4시에서 4시 30분 사이 출발한다. 그럼 배송구역까지 가는 시간이 30분~1시간 걸려 한 5시~5시 30분부터 물량을 소화한다. 그 중 신선제품은 8시까지 배송해야 하므로 먼저 한 바퀴 돌고 남은 물량을 배송하기 위해 갔던 곳을 또 가게 된다”며 “이 시간을 못 지키면 페널티가 거의 해고나 다름없어 사람들이 미친 듯이 뛸 수밖에 없는 거다. 안 지키면 잘리는데 안 달릴 수가 있나”라고 토로했다. 아울러 업무수행 기준에는 ‘월평균 프레시백(신선식품 담는 다회용 보냉백) 또는 반품 물품 회수율 90% 미만’도 있어 수행률 달성을 위해 이미 갔던 배송구역을 또 가는 일도 발생한다고 했다. 한편 CLS는 택배기사 노동시간이 주 60시간을 초과하지 않아 사회적 합의 수준보다 낮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배송 구역 회수 기준,
표준계약서상 계약 해지 요건과 차이

쿠팡 택배기사들은 대리점에 대한 위탁 물량 조정은 본인들의 배송 구역 회수(일명 클렌징)를 의미하고 이는 곧 계약 해지라고 말했다. 택배노조는 CLS의 배송 구역 회수가 국토교통부가 마련한 대리점-택배기사 표준계약서상 계약 해지 요건을 준수하지 않은 채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생물법과 표준계약서에 따르면 계약 기간 6년 이하의 택배기사가 대리점에 계약 갱신을 청구할 경우 폐업 등 최소한의 갱신 거절 사유를 제외하고는 거절할 수 없다. 아울러 갱신을 거절할 경우 갱신 요구를 받은 날부터 15일 이내에 거절의 사유를 적어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 또 대리점이 계약 해지를 원할 경우 60일 이상의 유예 기간을 두면서 택배기사에게 계약 위반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이를 시정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한다는 사실을 서면으로 2회 이상 통지해야 한다.

하지만 CLS는 자체 업무수행 기준에 따라 월 단위로 대리점을 평가하며 계약 해지나 위탁 물량 조정을 실시하고 있다. CLS는 대리점과 택배기사가 계약을 맺을 때 이 같은 내용을 충분히 인지하고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택배노조는 반발했다. 업무수행 기준에 동의하지 않으면 일을 시작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택배기사는 일부 내용이 부당하다고 생각해도 반박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이유다. 그러면서 CLS의 계약 해지 관련 조치는 택배기사의 고용 불안 문제를 개선하고자 마련된 생물법의 취지에 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선범 택배노조 정책국장은 “사회적 합의 이전에 택배 현장은 쿠팡처럼 상시적 고용 불안 문제가 있었다. 대리점 소장이 ‘내일부터 나오지 마’ 하면 택배기사가 바로 일자리를 잃는, 아무런 보호 조치가 없는 상태였다”며 “그것 때문에 과로해도 자기 의견을 말하거나 항의할 수 없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생물법에 관련 조항을 만든 거다. 다른 택배 현장 대부분은 이 조항을 지키면서 고용 안정이 이뤄지고 있는데 CLS만은 예외인 상태”라고 설명했다.

남희정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 본부장은 CJ대한통운 택배 현장과 관련해 “6년 계약갱신청구권이 대부분 현장에서 지켜지고 있다. 일부 대리점 소장이 일탈 행위를 한 것에 대해 소송에서 이긴 적도 있다”며 “표준계약서가 택배 현장에서 보편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 쿠팡은 법 사각지대에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택배노조는 CLS가 사회적 합의 주체로 들어와 있지 않더라도 정부가 CLS를 감독하고 문제로 지적된 점에 대해 명확히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2021년 택배 사회적 합의 당시 CLS 등 신규 택배사가 시장에 진입했을 때 합의사항을 어떻게 적용하겠다는 내용이 정해져 있진 않다. 하지만 현재 택배 시장 2위에 올라선 CLS는 기업이 성장한 만큼 사회적 합의 이행의 책임도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쿠팡 택배 현장에서도 사회적 합의 내용이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지에 관한 실질적인 관리·감독이 필요해 보인다.

https://www.laborpl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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